퇴근 후 혼자 하는 요리가 취미가 되기까지

🍳 퇴근 후 혼자 하는 요리가 취미가 되기까지

이 글을 쓰게 된 건,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온 저녁이었습니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달걀 두 개, 반쯤 남은 두부, 시들시들한 파 한 줌. 딱 그것뿐이었습니다. 배달 앱을 켜려다가 문득 멈췄습니다. “이거 그냥 볶아 먹으면 되지 않나?” 그날의 그 생각 하나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서른여덟 살, 중견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화면과 회의실과 엑셀 사이에서 보냅니다. 퇴근하면 몸도 머리도 탈탈 털린 상태라서, 예전엔 그냥 배달 음식 시키고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 보다 잠드는 게 루틴이었습니다. 요리라고 해봤자 라면 끓이는 것 정도. 그게 전부였고,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막상 해보니까, 요리가 저한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주더라고요.

오늘은 제가 어떻게 혼자 하는 요리를 진짜 취미로 삼게 됐는지, 그 과정을 솔직하게 적어보려 합니다. 잘 만드는 요리 블로그가 아닙니다. 그냥, 퇴근하고 지쳐서 돌아온 사람이 부엌에서 찾은 조용한 기쁨 이야기입니다.


🥄 혼자 하는 요리, 취미가 될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요리를 취미라고 말하기 좀 쑥스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거 그냥 먹고 살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묻는 분들도 있고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취미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기술을 배우거나, 결과물이 멋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근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취미의 기준은 딱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걸 하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끝나고 나서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지는가. 그거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요리는 저한테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칼질 소리, 기름 지글거리는 소리, 뭔가 익어가는 냄새. 이 감각들이 하나씩 채워질 때, 이상하게도 하루의 스트레스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우연한 발견이었는데, 반복하다 보니 이게 저만의 의식 같은 게 되어버렸습니다.


🌿 요리가 취미가 되기까지, 제 이야기

① 처음엔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초반 한 달은 처참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첫 번째로 도전한 게 간장계란밥이었는데 간장을 너무 많이 넣어서 짜다 못해 쓴 맛이 났습니다. 두 번째는 두부조림이었는데, 두부가 다 부서지고 국물이 없어지고 바닥이 탔습니다. 웃픈 일이지만 그날은 결국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습니다.

근데 신기하게도 실패가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없으니까요. 혼자니까 제가 망쳐도 저만 알고, 저는 저한테 관대하게 굴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번엔 왜 탔지?” 하면서 원인을 찾는 게 재밌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혼자 요리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실패의 부담이 없다는 것.

② 장보기가 기대되는 날이 생겼습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저한테 마트는 그냥 생필품 사는 곳이었습니다. 장 보는 게 귀찮은 일이었고, 빠르게 필요한 것만 집어 오는 게 목표였습니다. 근데 요리를 시작하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채소 코너에서 오늘 뭐가 싱싱한지 살펴보게 되고, 처음 보는 재료 앞에서 멈춰서 “이거 어떻게 먹지?” 하면서 검색해보게 됩니다. 가끔은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예뻐 보이는 걸 사서 집에 와서 어떻게 요리할지 궁리하기도 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게 시작된 게 처음 요리를 취미로 삼은 지 한 두 달쯤 됐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날부터 마트에 가는 게 즐거워졌습니다.

퇴근길에 동네 작은 마트에 들르는 것 자체가 소소한 기쁨이 됩니다. 오늘 뭘 만들어볼까, 냉장고에 뭐가 남아 있었지. 그 작은 고민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전환점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③ 레시피 없이 만들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무조건 유튜브나 요리 앱을 켜놓고 따라 했습니다. 레시피가 없으면 불안했습니다. 근데 어느 날, 핸드폰 배터리가 나간 상태에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감으로 만들었는데…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가끔은 레시피 없이 만드는 도전을 의도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냉장고 속 재료들을 가지고 퍼즐 맞추듯 궁리하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재밌었습니다. 마케팅 일을 하면서 늘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듣지만, 사실 부엌에서 요리할 때 그 감각이 더 자유롭게 살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건 진짜 제 솔직한 감상입니다.

④ 요리가 퇴근 후의 ‘스위치 끄는 시간’이 됐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몸은 나왔는데 머리는 아직 거기 있는 느낌. 이 감각 아시는 분들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이걸 제법 오래 겪었습니다. 집에 와도 업무 생각이 이어지고, 쉬면서도 쉬는 것 같지 않고.

근데 요리를 시작하고 나서 이 시간이 달라졌습니다. 칼질을 하고 불 앞에 서면, 거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거든요. 불 세기 조절하면서 팬 상태 살피고, 냄새 맡으면서 간 보고. 딱 지금 이 순간에만 있어야 하는 행위라서, 자연스럽게 업무 생각이 끊깁니다. 이게 명상이나 산책이 주는 효과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오히려 더 잘 맞았습니다. 뭔가를 하면서 비우는 게 저한텐 더 쉬운 방식인 것 같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점, 그리고 아쉬웠던 점들

좋은 것만 이야기하면 솔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 제가 겪었던 아쉬운 점들도 같이 적어보겠습니다.

  • 식재료 낭비 문제 — 처음에는 레시피 한 가지 보고 재료를 사면, 남은 재료를 다 못 쓰고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인 가구 기준 야채 한 묶음은 생각보다 엄청 많습니다. 이걸 해결하려면 처음부터 재료 기반으로 요리를 고르는 습관을 들이는 게 훨씬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 먼저 확인하고, 거기서 만들 수 있는 걸 찾는 방식으로요.
  • 설거지가 은근히 스트레스 — 요리하는 건 즐거운데, 끝나고 나서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을 보면 가끔 기운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걸 해결하려고 요리하면서 틈틈이 쓴 도구 바로 씻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아졌습니다.
  • 혼자 먹는 외로움 — 이건 솔직히 가끔 옵니다. 맛있게 만들었을 때 “이거 누군가랑 같이 먹으면 좋겠다”는 마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땐 가끔 친구 불러서 같이 먹거나, 아니면 그냥 그 감정도 오늘 저녁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 요리 도구에 돈을 쓰기 시작합니다 — 이건 주의사항이자 솔직한 경고입니다. 처음엔 있는 도구로 시작했는데, 조금 하다 보면 좋은 칼이 갖고 싶어지고, 주물 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관심이 생기면 장비욕도 따라오더라고요.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처음엔 최소한의 도구로 시작하는 걸 권해드립니다.

💛 이런 분들께 특히 추천합니다

모든 취미가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혼자 하는 취미 요리, 이런 분들께 잘 맞을 것 같습니다.

  • 퇴근 후 멍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허무한 감정이 드는 분
  • 뭔가 새로운 취미를 찾고 싶은데, 밖에 나가는 게 귀찮은 날이 더 많은 분
  • 집 안에서 손을 쓰면서 뭔가 만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분
  • 배달 음식이 질려가고 있는데, 그렇다고 굳이 식당 가기도 귀찮은 분
  •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냥 오늘 나한테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분

특히 마지막 항목이 저한테는 가장 와닿는 이유였습니다. 저한테 뭔가 해주는 것.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지만, 직접 만든 음식에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따뜻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시간을 쓴 흔적 같은 것. 서른여덟이 되고 나서야 그 작은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마무리하며

오늘도 퇴근하고 돌아와서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어제 남은 밥, 냉동실 구석에 있던 새우, 파프리카 반 개. 이걸로 볶음밥을 만들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들인데, 먹고 나서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거창한 취미가 아닙니다. 인스타에 올릴 만큼 예쁜 요리를 매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하루가 끝나는 시간에 부엌에 서서 뭔가를 만드는 것. 그 행위 안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걸 저는 요즘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바쁜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작고 따뜻한 선물. 저한테 요리가 그런 것이 됐습니다. 혹시 오늘 저녁, 뭔가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신다면, 그 마음 그냥 따라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해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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