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싫어하던 내가 동네 뒷산에 빠진 계기

🌿 등산 싫어하던 내가 동네 뒷산에 빠진 계기

솔직히 말하면, 저는 등산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아니, 싫어했다기보다는 ‘나랑은 상관없는 취미’라고 선을 딱 그어두고 살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주말마다 등산복 차려입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분들을 보면서 속으로 “저분들은 대체 무슨 낙으로 저러시나” 했으니까요. 38년을 살면서 등산화를 제대로 신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그런 제가 요즘 퇴근 후 뒷산을 오르는 걸 하루 중 가장 기다리게 됐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해서입니다. 저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변화라서,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 계기는 정말 사소했습니다

어느 날 야근을 끝내고 집에 오는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그날따라 팀장님과 작은 마찰도 있었고, 처리해야 할 업무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집에 들어가면 또 핸드폰 들고 소파에 쓰러질 게 뻔한데, 그게 싫었습니다. 그냥 딱 10분만 바깥 공기 마시자 싶어서 무심코 골목 끝까지 걸어갔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그날 처음으로 뒷산 입구를 제대로 바라봤습니다.

입구 초입에 나무가 꽤 울창했어요. 어두운 저녁이었는데도 가로등 불빛이 길을 따라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고, 올라가는 사람 두어 명이 보였습니다. 무섭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용해 보였습니다. 그냥, 올라가봤습니다. 등산화도 아닌 그냥 운동화 신고서요.

🥾 막상 올라가 보니, 달랐습니다

처음엔 5분도 안 돼서 숨이 찼습니다. 진짜로요. 부끄러울 정도였어요. 계단 몇 개 오르다가 잠깐 멈춰서 숨 고르고, 또 걷고, 또 멈추고. 그 반복이 좀 민망하기도 했는데, 근데 신기하게도 기분이 좀 괜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에서 뱅뱅 돌던 생각들이 조용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정상은커녕 중턱쯤 올라갔다가 내려왔는데,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땀이 조금 났고, 다리가 약간 뻐근했고, 밥이 더 맛있었습니다. 그게 다였는데, 그게 의외로 좋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갔습니다. 그다음 주말에도요. 정확하진 않지만, 첫 달에 열 번은 넘게 올랐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뒷산 길을 외우고 있는 저를 발견했을 때는 조금 웃음이 났습니다.

💚 진짜 좋았던 것들

  • 핸드폰을 안 보게 됩니다. 이게 생각보다 엄청난 일입니다. 걷는 동안엔 자연스럽게 앞을 봐야 하거든요. 계단이 있고, 나뭇가지가 있고, 가끔 고양이도 있고. 강제로 스크린에서 눈이 떨어집니다. 퇴근 후 두 시간을 그냥 누워서 유튜브 보던 제게는 정말 큰 변화였습니다.
  • 계절이 보입니다. 도심에선 봄이 와도 체감이 잘 안 됐는데, 산에서는 다릅니다. 연두색 잎이 올라오는 시기가 있고, 흙 냄새가 달라지는 날이 있고, 갑자기 새소리가 많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걸 몸으로 느끼는 게 은근히 좋습니다.
  • 비교가 없습니다. 산에서는 남보다 빨리 올라야 한다는 압박이 없습니다. 아무도 채점하지 않습니다. 제 페이스대로 걸으면 됩니다. 직장에서 늘 무언가에 평가받는 기분으로 사는 저한테, 그 자유로움이 굉장히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 잠이 잘 옵니다. 이건 거의 부작용 수준으로 좋은 점입니다. 뒷산 다녀온 날 밤은 유독 깊이 잠든다는 느낌이 납니다.

😅 아쉬웠던 점도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좋은 것만 있었으면 이 글이 광고 같았겠지요.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장 불편한 건 날씨에 완전히 종속된다는 점입니다. 비 오는 날, 미세먼지 심한 날은 그냥 포기해야 합니다. 처음엔 그게 별것 아닌 것 같았는데, 막상 습관이 생기고 나서 비 때문에 못 가는 날이면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실내 운동처럼 날씨에 상관없이 할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그리고 혼자 가는 저녁 산행은 생각보다 어두울 수 있습니다. 저는 동네 뒷산이라 조명이 어느 정도 있지만, 그래도 해가 짧아지는 계절엔 좀 무섭습니다. 처음에 그 부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가,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혼자 다니실 분이라면 손전등이나 헤드랜턴은 꼭 챙기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또 한 가지. 운동화로 계속 다니다 보면 발바닥이 제법 피로합니다. 저는 한참 후에야 등산화가 이래서 필요하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엔 몰랐어요. 그냥 튼튼한 운동화면 되겠지 했는데, 발 아치를 잡아주는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 자주 받는 질문들

Q. 등산 초보인데 뒷산도 힘들지 않나요?

처음엔 당연히 힘듭니다. 근데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5분 만에 숨찼고, 천천히 걸었고, 그렇게 익숙해졌습니다. 뒷산은 높이가 낮고 길이 익숙한 편이라 부담이 덜합니다. 처음에는 ‘정상 목표’보다 ‘그냥 올라가다 내려오기’로 시작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특별한 장비가 꼭 필요한가요?

동네 뒷산 수준이라면 처음엔 운동화로도 충분합니다. 다만 자주 다니게 된다면 발 편한 등산화 하나는 장만하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그 외에는 물 한 병, 그리고 저녁이라면 헤드랜턴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Q. 혼자 다녀도 괜찮을까요?

저는 거의 혼자 다닙니다. 낮 시간대라면 사람도 있고 충분히 안전합니다. 저녁 시간대는 동네 뒷산이라도 밝은 길 위주로, 처음엔 조금 이른 시간에 시작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익숙해지면 어두운 시간도 큰 무리는 없지만, 처음에는 낮 산책부터 시작하시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 마치며 – 이런 분께 추천드립니다

저처럼 퇴근 후 뭔가 하고 싶은데 딱히 할 것도 없고, 헬스장은 왠지 부담스럽고, 그냥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데 집에만 있기는 답답한 분들. 그 모든 조건을 이 작은 뒷산 산책이 채워줬습니다.

등산이라고 하면 괜히 멀고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저에게 동네 뒷산은 그냥 ‘걷는 곳’입니다. 숨 좀 차지만, 그 숨 차는 느낌이 묘하게 살아있는 기분을 줍니다. 복잡한 하루의 끝에 나무 냄새 맡으며 걷다 보면, 아까까지 속상하던 일들이 조금씩 작아집니다.

꼭 대단한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됩니다. 동네 뒷산, 그거면 충분합니다. 운동화 신고, 물 한 병 들고, 그냥 한번 올라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내려올 때쯤엔 아마 기분이 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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