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근길에 서점 문을 열기 시작한 날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냥 카페 가기 귀찮아서였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바로 들어가면 왠지 하루가 너무 허망하게 끝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카페에 가자니 커피도 이미 세 잔째고, 뭔가를 사야 한다는 압박이 싫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퇴근길 골목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져서 무작정 걷다가, 어느 작은 건물 1층에 불이 켜진 서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간판도 작고, 안이 얼마나 넓은지도 가늠이 안 됐지만 그냥 들어갔습니다.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근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뭔가 다른 공기가 있었습니다. 책 냄새라는 게 다 비슷비슷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동네 서점의 그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덜 정제된 느낌? 사람의 손이 많이 닿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날 이후로 저는 퇴근길에 동네 서점을 들르는 게 하나의 루틴이 됐습니다. 이 글은 그 루틴을 만들어 오면서 제가 직접 발로 뛰며 느낀, 좋은 동네 서점을 고르는 저만의 기준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 직접 여러 서점을 다녀보니 알게 된 것들
처음에는 그냥 ‘집 근처에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검색해서 별점 높은 곳을 찾아갔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5분 거리라는 곳을 갔는데, 실제로는 골목을 두 번 꺾어야 했고 계단도 있었습니다. 퇴근 후 구두를 신은 상태에서는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접근성이 첫 번째 기준이 됐습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하게 느낀 건 운영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퇴근하면 보통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인데, 문을 오후 6시에 닫는 서점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처음 찾아간 서점 세 곳 중 두 곳은 이미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은 꼭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플레이스에서 마감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가장 예상 못 했던 기준은 ‘서점 안에 앉을 자리가 있느냐’였습니다. 퇴근 후에는 그냥 책 한 권 집어 들고 잠깐 서서 훑어보는 것도 체력적으로 빠듯할 때가 있거든요. 작은 의자 하나, 아니면 낮은 창가 벤치라도 있으면 너무 좋았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책이 잘 큐레이션되어 있어도 서서만 봐야 하는 공간은 저한테는 오래 머물기 어려웠습니다. 몸이 먼저 솔직하게 반응하더라고요.
💛 퇴근길 서점, 이런 점이 좋았습니다
✔ 큐레이션이 살아있는 서점
대형 서점은 베스트셀러와 신간이 가장 앞에 나옵니다. 그게 나쁜 건 아닌데, 저는 그 안에서 제가 뭘 원하는지 오히려 더 모르게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동네 서점은 달랐습니다. 주인이 직접 고른 책들이 나름의 맥락으로 꽂혀 있고, 손글씨로 쓴 책 소개 메모가 옆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메모 한 줄 때문에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집어 든 적이 있습니다. 읽고 나서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 주인과의 짧은 대화
이건 취향을 많이 탈 것 같긴 합니다. 저는 원래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라, 처음엔 말 거는 서점 주인이 약간 불편했습니다. 근데 막상 해보니까 달랐습니다. “요즘 어떤 거 읽고 싶으세요?”라는 질문 하나에 제가 요즘 어떤 기분인지를 말하게 되고, 그에 맞는 책을 추천받는 경험은 알고리즘이 절대 줄 수 없는 감각이었습니다. 물론 조용히 혼자 보고 싶을 때는 눈인사만 해도 알아서 내버려 두는 분위기의 서점이 더 편하기도 합니다.
✔ ‘오늘 하루’를 분리해 주는 공간
직장인이라면 아마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바로 들어가면 밀린 카톡, 가족의 말, TV 소리, 집안일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서점에 잠깐 들르는 건 그 사이에 나만의 ‘에어락’ 같은 공간을 두는 느낌이었습니다. 회사도 아니고 집도 아닌, 그냥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15분. 저한테는 그게 정말 소중했습니다.
😔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좋은 말만 하고 싶지만, 그게 더 솔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도 꼭 적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재고가 너무 적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살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전시용으로만 두고 실제 판매는 주문 형식인 서점도 있었고, 딱 한 권밖에 없는데 이미 누군가 집어 들고 읽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아, 결국 온라인에서 사야 하나 싶어 조금 허탈했습니다.
- 운영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습니다. 공지 없이 임시 휴무인 경우, 운영 시간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헛걸음한 게 두세 번은 됐던 것 같습니다. 특히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찾아갔는데 문이 잠겨 있던 날은 진심으로 힘이 빠졌습니다.
- 가격 면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동네 서점 중에는 독립출판물이나 소량 출판된 책들을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책들은 일반 서적보다 단가가 높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가격에 살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몇 번 사고 나서 이해하게 됐습니다. 대형 유통망을 통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 가격 안에 담긴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깊더라고요.
🙋♀️ 자주 묻는 질문들 (제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 물어봤습니다)
Q. 책을 잘 안 읽는데 동네 서점을 즐길 수 있을까요?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독서량이 거의 없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서점에 들르는 건 계속했습니다. 꼭 책을 사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냥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뇌가 환기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서점 자체의 분위기, 공간의 온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조용한 표정들이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경험이 됩니다. 좋은 서점은 책을 팔기 이전에 좋은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Q. 어떤 서점이 퇴근길에 가장 적합한가요?
저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퇴근길에 가기 좋은 서점의 조건은, 첫째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5분 이내일 것, 둘째 저녁 8시 이후까지 열려 있을 것, 셋째 들어가서 책 한 권 들고 서 있어도 눈치 안 보이는 분위기일 것입니다. 여기에 앉을 공간이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무엇보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서점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건보다 감각이 먼저입니다.
Q. 서점 주인이 말을 걸까 봐 부담스러운데요.
완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처음 몇 번은 최대한 눈을 피하며 책만 봤습니다. 근데 대부분의 독립서점 주인분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릅니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사람인지, 말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꽤 잘 파악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말 걸기 싫으면 이어폰을 끼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그냥 목례만 하고 들어가면 대부분 알아서 배려해 주셨습니다. 부담 갖지 않아도 됩니다.
🌙 마무리하며 — 퇴근길이 조금 달라지는 경험
저는 서점을 고르는 기준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입니다. 그 서점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기분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조금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 오늘 하루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 기분, 집에 가서 책 한 장이라도 펼쳐보고 싶은 마음. 그게 생긴다면 그 서점은 여러분한테 좋은 서점입니다.
38살이 되고 나서 느끼는 건,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의식 같은 게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퇴근길에 잠깐 들르는 서점 하나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습니다. 오늘 퇴근길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분이 계신다면, 지나치던 그 작은 서점 문 한 번 열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따뜻할 것입니다.